
ESSAY
“누구나 어린 시절에 첫 자전거는 있어야 하잖아.”
| PUBLISHED 2021. JUL | AUTHOR 강가희(@kaiwriter) |
“누구나 어린 시절에 첫 자전거는 있어야 하잖아.”
미드 <프렌즈> 속 피비는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유년시절 자전거와 얽힌 추억이 전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 로스는 피비가 말한 것과 똑같은 분홍색 자전거를 그녀에게 선물한다. 드디어 피비에게도 첫 번째 자전거와의 추억이 생겼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의 첫 자전거는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기억한다. 입학식을 앞두고 얼마 되지 않아 자전거가 우리 집 앞마당에 들어왔다. 핑크색 바탕에 유니콘이 그려진, 작은 보조바퀴 두 개가 장착되어 있는 어린이용 자전거였다. 처음으로 나만의 탈 것이 생겼다. 날개는 없었지만 두 바퀴가 마치 유니콘의 양 날개인 마냥 어디로든 나를 데려가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들떴다.
처음 며칠은 보조바퀴를 단 채 달리다가 곧 탈착 후 자전거 연습에 들어갔다. 해가 땅거미로 떨어질 때면 아빠와 함께 집 근처 텅 빈 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아직은 빛이 남아 있는 어스름한 저녁 6시면 자전거 연습을 했다. 운동장의 원을 따라 둥글게 둥글게 선을 그리며 동그란 자전거 바퀴를 굴렸다. 아빠는 커브길을 돌 때면 인생도 그렇게 둥글게 둥글게 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넘어지는 것은 괜찮다고, 다른 길을 가도 괜찮다고, 다만 뾰족한 네모보다는 둥글게 둥글게 내면을 넓히며 너만의 길을 달리라고…
사실 그 당시에는 아빠의 말씀보다 내 자전거를 잘 잡고 계시는지가 더 중요했다. 달리면서도 연신 뒤로 곁눈질을 했다. 넘어질락말락 흔들리며 나아가는 내 뒤에는 아빠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빠 나 잘 잡고 있는거지? 손 놓으면 안 돼!”
“그럼 잘 잡고 있어. 아이고. 우리 딸 잘 간다.”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혹시나 해서 문득 뒤를 돌아봤더니 저 멀리 아빠가 서 계시고, 나 혼자 자전거를 씽씽 달리고 있었다.
“아빠! 잡고 있는다고 했잖아!!
어? 어어어---우아앙~~~~~”
잠깐 방심한 사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살짝 까졌고 , 빨간 피가 고개를 내민다. 상처가 아픈건지 아빠를 원망했던 건지 알 수 없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했던 기억.
아마 이 장면은 누구에게나 이질적이지 않은 자전거 첫 신고식일 것이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자전거라는 사물은 보편적인 아날로그 감성을 공유한다.
요즘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사물 관련 에세이를 쓴다. 이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다름아닌 ‘자전거’.
학생들은 처음 자전거를 샀던 날, 부모님에게 타는 법을 배웠던 시기, 호수공원이나 한강 등으로 라이딩을 갔던 경험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자전거와 자연이 빚어낸 바람이 살갗을 스칠 때면 포근했고, 출발할 때는 뜨거운 태양을 마주 했지만 돌아올 때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만났음에 황홀해했다.
자전거를 타며 주고받은 대화는 즐거웠고,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라이딩을 하는 그 순간은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선사한다.
11살 인생에도 추억은 소중하다. 아이는 그 추억을 바탕으로 더 많은 추억을 방울방울 만들어 갈 것이다

기억에도 유행이 있다면(가령 요즘 아이들이 카세트 테이프를 모르듯이 말이다.) 자전거야말로 전후무후의 클래식 중의 클래식인 것이다. 많은 것이 휙휙 바뀌는 요즘 세상이지만 유년시절 자전거에 대한 기억만큼은 세대차이가 나지 않는다.
추억의 사물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클래식이 있다면 그것은 '자전거'가 아닐까...

피비의 말은 옳았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첫 자전거는 있어야 한다.
자전거야말로 처음과 기억의 집합체이니까…그 처음이 다음 페이지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테니까…
꼬맹이 시절 처음으로 세 발 자전거를 타게 됐을 때의 생경함, 두발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됐을 때의 짜림함,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페달을 힘껏 밟을 때의 설레임, 내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줄 때의 기쁨까지. 자전거는 매 인생의 전환점에서 추억을 동반하며 우리네 삶에 들어온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던 루이스 부뉴엘의 말을 빌려 보자면 자전거야말로 아름다운 기억의 동력이다. 자전거 바퀴가 지나간 자리에 삶의 추억이 아로새겨진다.
“
추억의 사물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클래식이 있다면
그것은 '자전거'가 아닐까...
”

ESSAY
“누구나 어린 시절에 첫 자전거는 있어야 하잖아.”
2021. JUL
강가희(@kaiwriter)
“누구나 어린 시절에 첫 자전거는 있어야 하잖아.”
미드 <프렌즈> 속 피비는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유년시절 자전거와 얽힌 추억이 전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 로스는 피비가 말한 것과 똑같은 분홍색 자전거를 그녀에게 선물한다. 드디어 피비에게도 첫 번째 자전거와의 추억이 생겼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의 첫 자전거는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기억한다. 입학식을 앞두고 얼마 되지 않아 자전거가 우리 집 앞마당에 들어왔다. 핑크색 바탕에 유니콘이 그려진, 작은 보조바퀴 두 개가 장착되어 있는 어린이용 자전거였다. 처음으로 나만의 탈 것이 생겼다. 날개는 없었지만 두 바퀴가 마치 유니콘의 양 날개인 마냥 어디로든 나를 데려가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들떴다.
처음 며칠은 보조바퀴를 단 채 달리다가 곧 탈착 후 자전거 연습에 들어갔다. 해가 땅거미로 떨어질 때면 아빠와 함께 집 근처 텅 빈 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아직은 빛이 남아 있는 어스름한 저녁 6시면 자전거 연습을 했다. 운동장의 원을 따라 둥글게 둥글게 선을 그리며 동그란 자전거 바퀴를 굴렸다. 아빠는 커브길을 돌 때면 인생도 그렇게 둥글게 둥글게 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넘어지는 것은 괜찮다고, 다른 길을 가도 괜찮다고, 다만 뾰족한 네모보다는 둥글게 둥글게 내면을 넓히며 너만의 길을 달리라고…
사실 그 당시에는 아빠의 말씀보다 내 자전거를 잘 잡고 계시는지가 더 중요했다. 달리면서도 연신 뒤로 곁눈질을 했다. 넘어질락말락 흔들리며 나아가는 내 뒤에는 아빠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빠 나 잘 잡고 있는거지? 손 놓으면 안 돼!”
“그럼 잘 잡고 있어. 아이고. 우리 딸 잘 간다.”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혹시나 해서 문득 뒤를 돌아봤더니 저 멀리 아빠가 서 계시고, 나 혼자 자전거를 씽씽 달리고 있었다.
“아빠! 잡고 있는다고 했잖아!!
어? 어어어---우아앙~~~~~”
잠깐 방심한 사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살짝 까졌고 , 빨간 피가 고개를 내민다. 상처가 아픈건지 아빠를 원망했던 건지 알 수 없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했던 기억.
아마 이 장면은 누구에게나 이질적이지 않은 자전거 첫 신고식일 것이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자전거라는 사물은 보편적인 아날로그 감성을 공유한다.
요즘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사물 관련 에세이를 쓴다. 이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다름아닌 ‘자전거’.
학생들은 처음 자전거를 샀던 날, 부모님에게 타는 법을 배웠던 시기, 호수공원이나 한강 등으로 라이딩을 갔던 경험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자전거와 자연이 빚어낸 바람이 살갗을 스칠 때면 포근했고, 출발할 때는 뜨거운 태양을 마주 했지만 돌아올 때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만났음에 황홀해했다.
자전거를 타며 주고받은 대화는 즐거웠고,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라이딩을 하는 그 순간은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선사한다.
11살 인생에도 추억은 소중하다. 아이는 그 추억을 바탕으로 더 많은 추억을 방울방울 만들어 갈 것이다
기억에도 유행이 있다면(가령 요즘 아이들이 카세트 테이프를 모르듯이 말이다.) 자전거야말로 전후무후의 클래식 중의 클래식인 것이다. 많은 것이 휙휙 바뀌는 요즘 세상이지만 유년시절 자전거에 대한 기억만큼은 세대차이가 나지 않는다.
추억의 사물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클래식이 있다면 그것은 '자전거'가 아닐까...
피비의 말은 옳았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첫 자전거는 있어야 한다.
자전거야말로 처음과 기억의 집합체이니까…그 처음이 다음 페이지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테니까…
꼬맹이 시절 처음으로 세 발 자전거를 타게 됐을 때의 생경함, 두발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됐을 때의 짜림함,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페달을 힘껏 밟을 때의 설레임, 내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줄 때의 기쁨까지. 자전거는 매 인생의 전환점에서 추억을 동반하며 우리네 삶에 들어온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던 루이스 부뉴엘의 말을 빌려 보자면 자전거야말로 아름다운 기억의 동력이다. 자전거 바퀴가 지나간 자리에 삶의 추억이 아로새겨진다.
“
추억의 사물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클래식이 있다면
그것은 '자전거'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