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lady****
2021-07-09


ESSAY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PUBLISHED   
 
2021. JUL   
AUTHOR  
강가희(@kaiwriter)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툭- 내던진 베트남 사람의 질문은 적확했다. 이야기인즉슨 라오스로 향하던 작가는 경유지인 하노이에서 베트남 사람을 만나게 된다. 스치듯 만난 행인이 던진 질문이 바로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다. 책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라오스에 도착하자마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늘 같이 다니는 여행 친구와의 세 번째 여행이었다. 우리가 라오스를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특별한 것이 없음에 끌렸다. 당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여파로 이곳이 청춘의 대명사로 자리한 것도 한 몫 했다. 우리는 삼십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물론 마흔이 되어서 튜빙을 하고, 짚라인을 타고, 카약 투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열정을 다해 그 상황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토록 부정했던 나이의 물을 먹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작열하는 여름, 청춘이란 바다에 첨벙 뛰어 들어보고 싶었다.

 


보통 여행의 첫 날이 그렇듯 아침부터 진짜 열심히 다니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는 겨우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기여서 날씨는 후텁지근했고, 목은 갈증으로 타들어갔으며, 이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햇빛은 야속하리만치 쨍쨍했다. 이 나라는 사람들의 발걸음마저 소음 제한을 두기라도 한 듯 음소거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았다. 평일의 도심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구나. 길을 좀 헤맨 것 외에는 어떤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진정한 휴식! 할 일 없음을 추구하며  비행기까지 타고 찾아왔건만 어처구니 없게도 내 몸과 마음은 새로운 것들을 찾는 하이에나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나란 인간을 여전히 잘 몰랐다. 내 무덤을 판 셈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명소를 뒤졌다. 이런 여행자를 놀리기라도 하듯 한 번도 보지 못한 비경도, 멋진 사람도, 심장을 들뜨게 하는 예술작품도, 미친 듯이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울려 겨자 먹기로 딱히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블루라군’이라도 가보자는 심정으로 길을 알아보았다.

 

방비엥 도심(시내라고 하기엔 몹시 작은 마을이다.)에서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동차, 버기카, 자전거. 

자동차는 식상했고 매스컴 탓에 버기카가 유행이기는 했으나 앞서 언급했듯 발소리마저 거의 들리지 않은 이 마을에 우광쾅쾅 요란한 소리를 내는 버기카는 왠지 민폐처럼 느껴졌다. 조용한 일상의 무단침입자처럼 느꼈달까. 우리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는데 이 선택은 라오스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는다.

 


자전거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언제 이 녀석을 타봤더라... 머릿 속은 가물가물했지만, 몸은 자전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금세 내 두 다리는 페달에 적응해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시원한 블루 그 자체였다. 비가 내린 뒤 더 짙은 푸름을 입은 나무, 휘영청 길에 줄지어 지나가는 구름들,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 위를 마찬가지로 천천히 나아가는 뱃사공들,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떼들에게 길을 비켜줘야 하는 수고로움마저 근사했다.



자전거를 타며 만난 것들은 물론 처음 보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잊고 살았던 것들이었다.

 온전히 살아있는 나의 동력에 의해서 나아가는 매 순간, 귓가에 바람에 스쳤다. 그것은 막연히 생각했던 자유의 결 같은 것이었다. 세상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마디가 확장되고 있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빠르게 가속을 추구하면 마찬가지로 빠르게 지나간다. 반대로 천천히 시간을 느끼다보면 하루를 아주 길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길은 느림의 마술을 부린 것 같았다. 자전거 페달은 천천히 나를 목가적인 시공간으로 이끌었다. 과속의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시간을 천천히 추억의 속도로 늘려 보았다. 삶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리듬을 느끼며, 그 느림 안에서 비로소 행복의 징표를 찾았다.


싱그러운 녹음이 주는 풋풋함,

더 맑아지고 더 푸르러질 하늘,

뜨거운 태양의 당당함,

내가 길에 믿음을 쌓아 보려는 스스로의 마음가짐. 


#. 물론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라고 묻는 다면 나 역시 “그곳엔 아무것도 없어요.” 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길에는 꼭 자전거를 타라고 말하고 싶다. 그 길에서 아무것도 없음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타며 만난 것들은 

물론 처음 보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잊고 살았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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