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자전거

lady****
2021-08-21


ESSAY

아무튼, 자전거




 PUBLISHED   
 
2021. AUG   
AUTHOR  
강가희(@kaiwriter)





그러니까 일종의 연애를 했다. 새로움, 설레임, 긴장감, 치솟는 달콤함, 약간의 나태, 모든 이별 앞에 남는 미련까지.

 


자전거 에세이 요청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미있을 것 같은걸!’이었다. 여행, 책과 같이 큰 테마를 테두리로 글을 쓴 적은 많았지만 특정 사물 하나를 주제로 연재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흥미롭게 느껴졌다. 들뜬 마음은 소재 고갈에 대한 걱정을 가볍게 덮었다. (매일 눈뜨면 뭘 쓰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것은 안 비밀입니다.)

 

초기에는 이 이야기도 써보고 싶고, 저 이야기도 써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손이 근질근질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이것도 같이 하고 싶고, 저것도 같이 하고 싶은 심리와 비슷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으레 그렇듯 콩깍지가 씌어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굴렸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남들이 봤을 땐 평범한 누군가도 내 사람이 되면 달라 보인다.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 속 남자 주인공은 여자를 구슬 같다고 했다. “구슬같은 눈동자, 구슬같은 눈물, 구슬같은 이슬, 구슬같은 물결.. 어디다..... 어디다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자전거 역시 매한가지였다. 관심을 갖고 보니 어여쁘기 그지없었다. 모든 두 바퀴가 동그란 구슬마냥 영롱했고 눈부셨다. 다양한 모습을 한 자전거들이 눈에 띄었고, 자전거 상점마저 예사롭지 않았으며, 독일의 자전거 정책을 찾아보면서 감탄을 거듭했고,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인생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안에 들어왔다’는 광고 카피처럼, 자전거는 메타포가 되어 내 삶에 들어왔다.

 


모든 연애에서 온다는 슬럼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의욕저하라기보다 내 자질의 문제가 컸다. 하나의 사물로 12편을 풀어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때 출판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책 중 ‘아무튼’ 시리즈가 있다. <아무튼, 여름>, <아무튼, 메모> 등 한 가지 주제로 책을 엮은 것인데, 새삼 이 시리즈 저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싶었달까. 글이 매번 가래떡 뽑아내듯 술술 나오지 않았다. 한 세 네 편까지는 비교적 쉽게 썼고 이후로는 “뭘 쓰지?”와의 사투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일을 할지 언정 하루 종일 머릿속에 자전거를 넣어두면 ‘그 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떠오르기는 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 자전거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든 타지 않든 누구에게나 연관된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꼭 개인적인 사연이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 자전거는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끝끝내 애정을 놓지 않았다. 고맙게도 자전거역시 내 관심을 외면하지 않았다. 때로 보드라운 바람으로, 때로 적당히 리드미컬한 속도로, 때로 말간 공기로 화답해주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마음을 쏟다보면 말하지 않아도 응당 통하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서로 뜨겁게 사랑했다.

 


6월부터 8월까지. 태양의 자오선이 지나가는 열정적인 계절을 함께 달렸다. 이별을 앞둔 지금,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 마냥 야릇하기도 아쉽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자전거, 너란 녀석에 대해 더 잘 쓸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더 많이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부질없는 미련이 남지만, 넣어 두기로 한다. ‘그래. 성숙한 사람은 이별도 잘 해야 하는 거야.’ 애써 마음을 다독인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또 한 번의 연애를 하는 것과 같다. 때로 열정에 타올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식기도 하지만, 결코 잊을 수는 없는 것. 

그러다 또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 

그런 것.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 

아무튼, 자전거.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 

아무튼,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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