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걸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청민
2021-09-11



ESSAY

내가 이걸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PUBLISHED   
 
2021. SEP   
AUTHOR  
청민





'그러니 자전거를 먼저 사면 분명 또 후회할지도 몰라.'


 작심삼일형 인간은 퇴근 후 생각했다. 분명 한 두 달 열심히 타다가 피곤하다면서, 방구석에 놓인 저 통기타처럼 좁은 원룸의 골칫덩이가 될지도 몰라. 원래 자전거 타는 건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오래 꾸준히 타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적어도 작심삼일형 인간에겐 그랬다. '내가 이걸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성급히 자전거를 사는 대신 일산 공유 자전거 피프틴을 빌렸다. 한 시간에 천 원이니까, 호수공원 한두 세바퀴 정도 탈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매일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옷만 갈아입고는 길을 나섰다. 공유 자전거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같이 쓰다 보니 체인이 고장 나있는 경우도 많았다. 아주 무거운 체인으로 고정된 자전거가 당첨된 날엔, 작은 언덕에도 숨이 헉헉 차선 자전거를 끌고 돌아오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타다 보니 숨이 쉬어졌다. 신입사원 이란 원체 작은 것에도 숨을 잘 참는 존재였으니까. 태어나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도시에서 홀로 산다는 것,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 잘 해내고 싶은데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 사이에서 나는 자꾸 숨이 막혔던 모양이다. 자꾸 숨을 잔뜩 참는 나를 발견할 때면 자전거를 탔다. 피프틴을 빌려 호수 공원으로 나와 달렸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반 년이 되었다. 내가 뭔가를 이렇게 꾸준히 했던 적이 있었나. 자전거를 탄 시간만큼 '좋아함의 근육'이 붙어선,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전거 얘기를 했다. 퇴근 후에 자전거 한 번 타보세요. 바람이 되게 좋아요. 공원에 자전거 길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툭 치면 '좋아요, 좋아요!' 하는 녹음 곰인형처럼 마음을 팡팡 쏟아냈다. 그런 나를 보며 으이그~하는 표정을 짓는 선배를 보고 알았다. 아, 나 자전거를 좋아하게 되었구나. 나, 자전거를 사도 괜찮겠구나. 


그렇게 (내 손으로) 첫 자전거를 샀다. 동네 자전거 할인매장에서 적당한 가격의 접이식 자전거를 집에 데리고 왔다. 집에 보관도 해야 하고, 얘랑 여기저기 여행도 가야 하니까 꼭 접이식 자전거가 필요했다. 물론 헬멧도 샀다. 사실 헬멧은 자전거를 사고 싶은 마음을 누르려고, 자전거를 사기도 전에 먼저 샀다. 평소 같으면 흰색이나 검은색처럼 무난한 것을 골랐을 테지만, 삶이 무난해서 그런지 괜히 톡톡 튀는 색을 갖고 싶었다.


테라코타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면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능숙하지 못해 어설픈 나 말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자꾸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나 말고, 뭔가를 꾸준히 잘 해내지 못하는 나 말고.

잘 못해도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 홀로 복습하고,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해도 곁에 가 관심을 가지려 애쓰고,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려고 책도 영화도 전시도 많이 보려고 시간을 내는 괜찮은 사람, 새로운 사람이. 멀리서 봐도 한눈에 톡 띄는 테라코타 헬멧을 쓰고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면, 나는 마치 그런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공유 자전거 피프틴과 첫 접이식 자전거 레체를 거쳐선 올여름에 브롬톤을 샀다. 무언가를 매일매일 해낸 사람이라면, 앞으로 오래오래 자전거를 타는 사람으로 살 것 같았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자전거를 사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되고 자꾸만 확장되고 깊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영 포기가 빠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하고 오해하고 살았는데,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알았다. 나도 무언가를 쌓아가고 이어가고 오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단단하게 쌓은 작은 매일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누군가 시켜서, 내가 잘할 것 같이 보여서 시작한 것들과는 뿌리부터 다르다. 자연스레 좋아하게 된 것들을 키워가는 마음은 기대보다 성실했고 단단했으며 그 속엔 간절함이 있었다. 퇴근 후 내 마음을 탈탈 털어버리고 싶다는 간절함, 빨리 회사에서 잘 해내고 싶다는 신입의 조급함, 한다고 하는데 자꾸만 엉켜버리는 사회 초년생의 기대와 실망. 그런 마음들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어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지만,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배웠다.


작은 것들을 꾸준히 쌓으면 

큰 마음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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