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며 생각한 것들

glly
2021-04-14









ESSAY

달리며 생각한 것들



 PUBLISHED   
 
2021. April   
AUTHOR  
정보화(글리)





부모님이 올라오셨다가 점심만 겨우 먹고 부랴부랴 그 길로 내려가셨다. 먹고사는 게 영 시원찮아 보인다며 두어 달에 한 번 김치며 반찬거리를 채워주시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부모님이 가시고 짐을 풀어 정리를 하려고 보니 김치 종류만 다섯 가지, 계란 한 판, 꽁꽁 싸매진 검정 비닐봉지 안에는 김이며 통조림 같은 게 들어있다. 일주일에 한 번 밥을 해 먹을까 말까 할 만큼 식생활이 엉망이 된 지 오래라 사실 엄마가 해준 음식을 끝까지 잘 먹은 일이 별로 없다. 처음 며칠이야 엄마 김치며 반찬이 귀해 열심히 챙겨 먹을 것처럼 해도 금방 이전의 식생활로 회기해 버리고 만다. (퇴근 후 밥을 해 먹는 건 아무래도 공이며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여러 해를 이렇게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하다 보니 엄마의 반찬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며칠을 장보고, 담그고, 만들어 바리바리 싸 짊어지고 올라오기까지의 수고를 생각하면 되려 속이 상한다. 


그렇다고 해오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한 적은 없다. 혹여나 못 먹고사는 줄 알까, 그래서 더 염려하실까 봐서.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다 익기 전에 통에 나눠서 주변에 친구들이랑 나눠먹어. 먹을 때 먹어야지 시간 지나면 잊어버리니까.' 때마다 못 먹고 버리는 걸 엄마가 아는 눈치라 뜨끔했다. '그리고 밥 좀 사 먹지 말고 좀 해 먹어. 어떻게 만날 사 먹는 밥만 먹니. 밥 잘 챙겨 먹는 거 그거 뭐 대수냐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잘 먹어야 몸도 마음도 축이 안나는 법이야. 바쁜 척하지 말고 좀 챙겨 먹어. 그러다 확 늙어! 오늘 보니까 너도 늙더라." 명치를 정통으로 때린 엄마의 한 방에 약간 어질 했지만 전화를 끊고 마저 정리를 이어했다. 그리고 엄마 말 끝에 생각난 친구가 있어 김치도 좀 나눠 담아두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흘렸을 텐데 오늘따라 엄마와의 대화가 오래 마음에 맴돈다. 결국에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것일 텐데 어째 내 삶엔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쏙 빠져있고 목적 잃은 '열심'만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날 저녁,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친구네에 다녀왔다. 마음에 묵직하게 걸려 있는 생각에 집중하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막상 돌아오려니 피곤이 묵직해져 돌아갈 길이 캄캄했다. 완연한 봄인 줄 알았는데 자정이 넘은 밤바람이 소매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겨울 흔적을 느꼈다. 자전거로 40분 거리.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길을 나섰다. 잠이 든 것처럼 순한 얼굴을 한 서울 풍경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뻥 뚫린 자전거 도로를 세차게 가르며 내달렸다. 거침없이 뻥 뚫린 도로를 마음껏 달리고 있자니 자유롭기 그지없었다. 찬 바람에 얼얼했던 볼이 열기에 녹기 시작해 자글자글한 기분이 들 때쯤, 불현듯 엄마의 말이 다시 생각의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대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만큼 나와 곁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일을 열심히 할 때라고 생각해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나와 곁을 돌보는 일 역시 때가 있는 일이라는 걸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이제라도 때를 알아챘으니 다행이다. 생각의 물고를 쫒다 보니 엄마는 내가 끝끝내 다 먹지 못했다는 사실 말고도 더 많은 걸 알고 있는게 분명해 보였다.  '나를 위해 즐겁게 저녁을 차리는 일'이 비단 배만 불리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그리 생각하니 브레이크가 걸린 듯 서서히 조급한 마음이 완만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 퇴근길에는 시장을 들러 장을 보면 좋겠다. 봄 나물이 한창인데 하마터면 이 계절의 맛을 잊을 뻔했다. 자고로 봄에는 봄나물인데 말이다. 잊어버리고 달리다 보니 금방 동네에 들어섰다. 벌써 내일 퇴근 후 저녁이 기다려진다.  



자전거로 40분 거리.
잠이 든 것처럼 순한 얼굴을 한 서울 풍경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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